매불쇼에서 한국사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서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에 대해 다시 인식하기 위해 글로 남김
임오군란(壬午軍亂)은 1882년 훈련도감에서 해고된 구식 군인들의 13개월 동안 체불된 임금을 정부가 저급 불량쌀로 지급하여 일어난 난이다.
<요약>
19세기 후반 한국 사회의 위기 또는 그 시대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극복하려는 당시의 사 상은 크게 나누어 볼 때, 기본적으로 위정척사사상(衛正斥邪思想), 개화사상(開化思想), 동학 사상(東學思想) 등 세 개의 사조(思潮)로 등장하였다. 이 세 사조는 각기 나름대로 그 시대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. 위정척사사 상은 보수(保守) 기득권층(旣得權層)을 중심으로 기존의 성리학적 질서를 유지하려고 하였다. 개화사상은 양반(兩班)과 중인(中人) 출신의 소수 지식인들, 소위 개화파(開化派)들이 서구 열 강의 힘의 원천을 근대적 과학 기술과 자본주의 사회 경제 제도에 있다고 보고, 이를 도입함 으로써 체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다. 이는 ‘위로부터의 근대화’를 추진하게 된다. 동학사상 은 서구의 힘의 원천을 서학(西學)이라고 보고, 이에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 서양의 침탈을 막 고 체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 사상이다. 이 사상은 그 주체를 농민(農民)으로 설정하였다. 이러한 세 가지 사조를 바탕으로 그 시대에 주어진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발생하는데 그 대표적 사건이 바로 임오군변(壬午軍變)과 갑신정변(甲申政 變)이다. 임오군변은 위정척사사상을 가진 보수적인 양반세력이 약화되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 대원군을 앞세운 재집권(再執權) 시도라고 볼 수 있다. 이에 반하여 갑신정변은 개화사상 을 바탕으로 정치적인 엘리트 세력들이 서구적인 근대국가 수립을 목표로 일으켰던 정치적 쿠 데타였다.
갑신정변(甲申政變)은 1884년(갑신년) 12월 4일(음력 10월 17일) 김옥균을 중심으로 한 급진 개화파가 서구식 근대화를 목표로 일으킨 정변이다.
<요약>
일본공사와 일본군의 지원을 받아 우정총국 개국 축하연에서 난을 일으켰다. 고종을 속이고 새 내각을 구성해 정강 14조 등 개혁을 추진하려 했으나 청군이 창덕궁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하고 민중들이 일본공사관을 공격하자 퇴각하는 일본군을 따라 일본으로 망명하여 삼일천하로 끝났다.
이 정변에서 급진 개화파는 여러 온건 개화파들을 살해한다. 윤태준[4], 한규직[5], 이조연[6] 등 영선사 출신이나 민씨 척족 중에서 개화에 적극적이었던 민영목[7], 민태호[8], 그리고 조영하[9] 등 여러 온건 개화파들이 살해당했다.
고종에게도 큰 트라우마로 남은 사건으로, 급진 개화파와 온건 개화파 모두 상당 수의 인재들이 사라져 향후 근대화에 걸림돌이 되고 청의 내정간섭이 심해지는 등 큰 부정적 영향을 주었다.
참조:나무위키,위키백과